가상자산 과세, 또 미뤄지나
내년 1월 가상자산 소득 과세 시행을 앞두고 추가 유예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가 업계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제도 시행을 위한 준비 상황 점검에 나섰다. 가상자산 거래 방식이 다양해지고 시장 환경도 빠르게 변화하면서 과세 기준을 구체화하고 관련 인프라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가상자산 과세는 당초 지난해 1월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24년 12월 여야 합의에 따라 시행 시점이 2027년 1월 1일로 2년 연기됐다. 이후에도 정치권과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과세를 위한 기반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추가 유예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권대영 재정경제부 1차관은 20일 서울지방조달청 PPS홀에서 금융위원회와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 전문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가상자산 과세 현장 간담회를 개최했다. 간담회에는 두나무와 빗썸, 디지털엑스, 코인원, 스트리미 등 가상자산 거래소 운영업체를 비롯해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닥사), 타이거리서치 등이 참여했다. 정부는 이날 논의에서 과세제도 시행과 유예에 관한 쟁점을 살펴보고 업계와 전문가들이 제시한 개선 의견을 청취했다.
권 차관은 인사말을 통해 가상자산 시장의 빠른 변화를 고려한 과세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상자산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거래와 서비스가 빠르게 등장하고 국경 간 거래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며 과세 원칙을 지키는 동시에 시장 변화와 거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해 제도를 세심하게 설계하고 운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는 ‘가상자산 소득과세에 대한 주요 논의’를 주제로 발표했다. 박 교수는 가상자산 과세를 둘러싼 주요 쟁점과 해외 사례, 국가 간 정보교환 등을 소개하고 과세를 시행할 경우와 유예할 경우 각각 검토해야 할 사항을 설명했다.
박 교수는 미국과 영국, 일본 등 주요국에서 이미 가상자산 과세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반면 한국은 2020년 과세제도를 마련한 이후 시행이 세 차례 미뤄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세제도가 실제 시장에서 합리적으로 작동하고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시행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무엇보다 과세 기준의 명확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시장이 성장하면서 거래 방식이 다양해지고 복잡해진 만큼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 납세자와 사업자 모두 세금 신고와 납부 과정에서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참석자들은 명확한 과세 기준을 통해 관련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했다.
과세자료를 제출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과 검증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주요 요구 사항으로 제시됐다. 거래소 등 사업자가 관련 시스템을 마련하고 실제로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려면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해외 거래소를 이용하는 투자자와 국내 거래소 이용자 사이에 과세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내 시장 여건과 글로벌 정책 환경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전문가들 역시 납세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과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과세제도가 입법화된 2020년 말 이후 가상자산 시장과 제도적 환경이 크게 달라진 만큼 과거에 마련된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현재의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다.
특히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에 따른 제도 변화도 과세 방안을 검토할 때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거래 유형별 과세 기준을 구체화하는 작업도 과제로 꼽혔다. 스테이킹 등 다양한 거래 방식에 대해 어떤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할지 명확히 하고, 투자 손실의 이월공제와 세금 신고 절차의 편의성을 높이는 방안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권 차관은 소득이 발생한 곳에 세금을 부과한다는 기본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원칙이 시장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다’는 원칙은 존중돼야 하고 그 원칙이 시장에 제대로 뿌리내리려면 과세 인프라와 시장 규율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 간 정보교환 여건과 거래 유형별 과세 기준, 신고 편의성 등 제도 시행을 위한 준비 상황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겠다고 설명했다. 간담회에서 제기된 의견을 충분히 검토하고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의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번 간담회에서는 가상자산 과세의 시행 여부만이 아니라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도 함께 논의됐다. 과세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변화한 시장 환경과 사업자의 준비 여건을 어떻게 반영할지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정부가 업계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검토한 뒤 어떤 방향을 제시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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